| 제목 | (東아시아 陶磁器)2. 磁器의 時代 : 靑磁中心時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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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아시아 陶磁器)3. 磁器의 時代 : 白磁中心時代 | 2004-10-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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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아시아 陶磁器)1. 土器.陶器의 時代 | 2004-10-06 | |
| 작성자 | Expo | 등록일 | 2004-1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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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中國 세계도자의 목표는 견고하고 아름다우며 청결한 磁器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위해 수천년 동안 기술을 탐구하고 연마한 결과 7세기경에 비로서 磁器質에 가까운 靑磁를 완성하게 된다. 이 청자는 14세기중반까지 약 칠백년간 세계도자의 중심에 서 있다가, 품질이 한 층 더 높은 白磁에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그래서 8세기부터 14세기중기까지를 ?靑磁中心時代?, 그 이후 현재까지를 ?白磁中心時代?라고 부른다. 중국 南北朝時代에는 陽子江 河口地方인 浙江省 동북 해안일대의 越州窯에서 初步的靑磁가 더욱 발전하면서 점점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6세기경에 북쪽 黃河流域의 窯에서도 소위 北方靑磁라고 하는 특수한 장식의 靑磁가 나타나는 한편, 백토 위에 無色透明釉를 씌운 初步的 白磁도 출현하게 된다. 비로서 중국은 磁器時代의 직전 단계에 들어섰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발전과 함께 가속도가 붙어서 당시대(7~8세기)에 급성장 하게 되었다. 商品으로서 靑磁가 대량생산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종과 기형 및 단단한 재질과 아름다움에 대한 요구가 생겼으며, 이를 만족시킬만한 높은 기술이 이미 확보되어 있었고 또 조형적으로도 세련되어 있었다. 南方 越州窯의 靑磁와 北方 邢州窯?定州窯의 白磁 등이 완성되고 최고의 수준으로 오른 때도 8세기 후기부터이며, 9세기부터 동아시아는 물론 서아시아까지 해외 수출이 본격화된다. 이러한 완성과 확대의 시대에 한반도에서 그것과 동일한 수준의 청자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정말 뜻 깊은 일이다. 五代를 이은 北宋代(960~1126년)에도 각지에서 특색있는 도자기가 생산되었다. 北方에 耀州窯?定州窯?磁州窯와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汝官窯 등은 어느 것이나 실용적 기능과 이상적인 형태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유약의 아름다움, 정교하며 우아한 문양장식,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조화되어 예술 본래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뒤이은 南宋의 官窯와 元代(1206~1367년)의 龍泉窯와 景德鎭窯 등은 국내는 물론 해외수출에 전력을 다하여 중국의 國富와 함께 世界陶磁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당시 중국 청자를 수입하고 있던 여러 나라 가운데 직접 생산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던 유일한 나라는 韓國 뿐이었다. 물론 우리 국토가 중국과 인접해 있어서 개연성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한반도의 지도층들은 신발명품인 중국 청자를 수입해 쓰면서 그의 아름다움과 실용성 및 경제성 등 장점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먼저 이해하였고 그것을 자체 생산하려는 사회 경제적 합의와 잠재적 요구가 확산되어 있었다. 드디어 統一新羅時代 後期인 9세기에 중국 최대의 청자 생산지인 越州窯 系統의 전문 기술진들이 직접 한반도에 건너 와 서남해안의 십여개소에서 거의 동시에 중국과 거의 유사한 靑磁 窯의 문을 열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나 청자에 한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맑고 투명도가 높은 翡色靑磁의 완성, 象嵌技法의 창안 등은 고려인의 창조물이다. 특히 중국청자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 발전을 거듭하면서 高麗的으로 변용시킨 결과, 불과 200년 남짓한 기간에 종주국인 중국을 제치고 天下第一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정말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청자는 釉藥과 胎土 및 형태, 그리고 장식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으며, 陰刻과 陽刻의 彫刻技法, 鐵畵와 堆花技法, 또 이들을 응용한 소위 象嵌技法이 고려청자의 중심으로 등장하면서 12세기에는 質과 造形, 機能 등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탐구 과정에서 12세기전반에 酸化銅 顔料를 이용해 還元焰에서 붉은색 辰砂彩를 개발한 것은 정말 뜻 깊은 일이다. 아름다운 翡色釉胎의 완성, 象嵌技法의 창안, 붉은 색 辰砂彩의 발견으로 세계도자의 역사는 한층 더 다양해지고 풍요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청자는 朝鮮時代에 들어서 朝鮮的 表現으로 변화되고 있었는데, 이것을 별도로 粉靑沙器라고 부른다. 粉靑은 청자의 단정하고 우아한 洗練美와 달리, 건강하고 逸脫된 美의 경지를 보이며 폭발적인 수요에 의해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지만 곧 이어 중심으로 등장하는 白磁에 그 위치를 내어주게 된다.
일본은 자체적인 靑磁文化를 경험하지 못했다. 靑磁中心時代에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서 수입한 磁器에 의존하고 있었다. 자체 생산품은 須惠器系統의 硬質陶와 9세기초 平安時代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灰釉陶가 主種인데, 須惠器系는 猿投窯를 중심으로 珠州窯 등이 대표적이며 전통적인 일상용기를 주로 생산하고, 灰釉陶는 발전을 거듭하여 12세기말부터 중국 도자의 형태를 모방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그중 대표적인 賴戶窯의 灰釉陶와 黑釉陶들은 수입된 중국자기와 함께 상층사회에 크게 유행하게 된다.
세계에서 중국과 한국에 이어 청자를 세 번째로 만든 나라는 베트남이었다. 중국 지배에서 벗어난 李朝時代(1010~1225년)에는 자체기술로 만든 白磁에 鐵畵로 黑色 斑點을 찍거나 간략한 蓮瓣文을 그려 넣은 독자성이 강한 白釉褐彩 系統을 제작하였다. 陳朝時代(1225~1400)에 와서 중국도자의 기술을 적극 응용하는데, 白磁?靑磁?黑磁에 鐵畵文이 유행하고 생산량이 증가하여 동남아를 비롯한 일본 등지에 수출하면서 급속한 발전을 보이게 된다. 캄보디아에서도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것으로 유명한 크메르文化期인 9-13세기에 黃釉와 黑釉를 함께 씌운 형태가 아름다운 施釉陶를 구웠다. 초기의 것은 透明釉를 얇게 바른 것이지만, 곧 黃釉?白釉와 漆黑과 黑釉도 만들어서 다양해 졌다. 이 크메르의 陶器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독특하고 특별한 의장을 한 것이어서 세계인의 주목을 끌고 있지만, 13세기이후 타이족의 침입하면서 크메르 陶器의 모습은 사라졌다. 타이는 13-14세기경 黃色의 靑磁系와 여기에 鐵畵文을 그려 넣거나 특수한 장식을 한 도기를 양산하고 동남아와 서아시아까지 수출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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